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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 무조건 쓸어버리는 것이 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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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8-11-11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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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단풍의 계절이 무르익어 낙엽과 함께 낭만과 사색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프랑스의 소설가·시인·극작가·문예평론가인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의 한 구절인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는 어지간한 사람은 다 외고 있다. 이제 단풍이 물든 나뭇잎들은 곧 땅에 떨어져 낙엽으로 구른다. 이미 낙엽은 곳곳에 떨어져 사람들의 발길에 밟히며 바스락 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새벽녘에는 이 낙엽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관행이다. 더러는 세찬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기계로 낙엽을 한쪽으로 내몰아 무더기로 폐기한다.

   물론 낙엽이 쌓인 거리는 지저분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낙엽에 미끌어져 다칠 위험성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낙엽은 자연의 산물이며 가을과 초겨울이 주는 축복이다. 낙엽을 밟으며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생명체의 순환 논리를 몸소 체험한다. 또 구르몽의 시구처럼 낙엽 밟는 소리를 들으며 깊은 사색과 낭만을 즐기게 된다. 우리나라처럼 낙엽이 떨어지는 족족 쓸어버리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산에 있는 낙엽을 가져와 거리에 깔아놓고 깊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배려하는 경우도 있다. 
   유럽의 소도시는 가을에 떨어진 낙엽을 그대로 방치해 발목이 푹푹 빠지는 곳도 있고 그 낙엽 위에 겨울철 눈이 내려 쌓인다. 가을에 그런 도시를 방문한 여행자들은 모두 낙엽을 밟는 소리를 기억하고 알록달록한 자연의 양탄자가 선사하는 낭만을 기억한다. 자연과 정서의 놀라운 합창을 경험하는 것은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정신세계에 깊은 울림으로 온다.

   경주시는 2천년 고도다. 유서가 깊은 도시일수록 이 같은 낙엽의 효과가 제대로 필요하다. 그러나 경주 어디에도 낙엽을 밟으며 여유를 즐길만한 곳이 없다. 종일 쌓인 낙엽은 새날이 밝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도시미관이 낙엽을 깨끗하게 쓸어버리는 것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나무에 매달린 잎들은 줄곧 떨어지는데 바닥은 말끔한 것이 오히려 부자유스럽고 비정서적이다.

   반드시 낙엽을 거둬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낙엽을 방치하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고도의 품격을 높여줄 수도 있다. 무조건 말끔하게 쓸고 닦는 것이 과연 우리의 정서에 부합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일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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