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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가의 현재 누구의 희생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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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9-06-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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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경북신문기자] 운동장에서 돼지 오줌통을 부풀려 축구를 하고 있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갑자기 교정에 울리는 종소리를 듣고 운동장 연단 앞으로 모였다. 군용 트럭이 먼지를 뿜고 운동장에 도착했고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 트럭에 올라탔다. 트럭은 학생들에게 목적지를 가르쳐 주지 않고 또 비포장도로를 달려 임시 막사에 도달했다. 트럭에 탔던 학생들은 그곳이 바로 전쟁터라는 것을 알았다. 6·25 전쟁에 참전했던 어느 학도병의 진술이다.

  그는 포항전투, 안강전투, 동강전투에 투입되면서 차곡차곡 북진했다. 죽을 고비는 매일 닥쳤다. 자신의 키보다 큰 총을 질질 끌고 무작정 북진했고 낙동강이 바라다보이는 희천에 다다랐을 때 이제는 통일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꿈은 중공군의 전쟁 개입으로 산산이 부서졌다. 각개후퇴하되 생존하라는 지시를 받고 허둥지둥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살을 에는 추위였지만 덩치보다 큰 방한복이 후퇴하는 행동을 굼뜨게 했다. 방한복을 던져버리고 나니 몸은 가벼웠지만 칼바람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배가 고프면 피난 간 빈집의 부엌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았고 미처 주인을 따라가지 못한 닭을 잡아 연명했다. 바로 옆에서 숨을 쉬던 전우가 흔적도 없이 포탄에 사라질 만큼 전투는 치열했지만 차라리 그 공포 속에서라도 누군가와 함께하면 좋겠다는 외로움이 밤이 되면 밀물처럼 밀려왔다.

  6·25 전쟁 69주년을 맞은 날 우리 주변에는 철없는 나이에 전쟁에 참여했던 학도병들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려야 한다. 그들은 아흔을 넘겼거나 턱밑에 있다. 그들이야말로 우리 조국의 오늘이 있게 해 준 진정한 영웅들이다. 아직 부모의 슬하에서 학업에 몰두했어야 했던 나이에 전장으로 나아가 산화했던 이름 없는 영웅들은 지금도 유해를 찾지 못해 참혹했던 전장에 묻혀 있기도 하다.

  한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처럼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젊은이들은 국가의 존재가 어떤 희생을 바탕으로 했는지에 대해 무감하다. 너무 오랜 분단도 심각한 비애가 아니다. 국가관과 애국심이 마치 유행 지난 이념 서적처럼 보이기도 한다. 우리 국가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와 정신으로 꼿꼿하게 서고 있는데 정작 내부의 정신문화는 몽롱하고 무감각하다. 민족의 비극을 생각하는 기념일에 각성할 부분이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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