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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생활칼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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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혜식 작성일21-03-1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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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혜식거짓말은 때론 사회적응력을 높인단다. 하긴 진실은 항상 걸음이 느린 게 특징이긴 하다. 어찌 진실이 걸음만 느리랴. 그 강도도 미미하여 어떤 일의 성과를 더디게 이끌기도 한다. 한편 거짓말은 그 효력이 매우 신속하다. 또한 사람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고 총명한 눈빛마저 흐리게 한다. 때론 거짓이 진실보다 훨씬 달콤하고 안전할 수도 있는 듯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거짓말의 현란한 혀에 현혹되는 순간, 혹은 배신, 이별이란 달갑잖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어디 이뿐이랴. 심지어는 귀중한 재물 및 어느 경우에는 건강, 사회적 신분까지 상실 당하지 않던가. 이로보아 '거짓의 지뢰밭'을 밟지 않도록 지혜로워야 할 것이다.
   필자가 주부여서인가. 삶 속에서 눈속임을 당할 때마다 실망 아닌 실망을 하기 예사다. 대형 마트에 가서 장을 볼 때마다 맞닥뜨리는 일이다. 평소 생선인 고등어를 즐겨 먹는다. 그것을 구입할 때마다 기분이 언짢다. 간 고등어인 경우 한 손에 두 마리를 포개어 포장해 팔곤 한다. 이 때 눈여겨보면 포개어진 두 마리의 고등어 중 겉에 드러난 한 마리는 제법 크다. 문제는 그 속에 넣어진 한 마리의 고등어 크기다. 안에 들어있는 고등어가 등에 업고 있는 고등어에 반하여 확연히 그 크기가 작다. 어디 이뿐이랴. 채소 및 과일도 이런 양상은 매한가지다.     열무 단을 사서 끈을 풀어헤쳐 볼 때마다, " 또 속았구나" 라는 상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열무 단 겉엔 싱싱하고 보기에도 연해보이고 실한 열무들로 놓여 있다. 그러나 열무 단을 풀어헤쳐 속에 들어있는 열무를 대하노라면, 마치 겉 다르고 속 다른 표리부동한 사람을 대하는 듯한 일말의 배신감마저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열무 단 속엔 줄기도 시들고 이파리도 누렇게 떠서 한 눈에 봐도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열무들로 속을 채운 게 대부분 일 경우도 있다. 과일은 어떤가. 상자를 뒤엎어 확인하기 전엔 옴팡지게 상술에 당하고 만다. 과일 상자를 사들고 집에 와서 쏟아보면 겉의 과실 크기와 속에 들은 과일 크기가 현저히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눈을 돌려보면 이런 농수산물만 속임수를 쓰는 게 아니다. 거짓의 옷을 걸치지 않은 채 진실한 나상裸像을 전부 드러내 보이면 그 진면목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일까? 아니면 몇 겹의 허울을 뒤집어쓰고 본령을 숨겨야만 인정받는 세상이어서 일까? 내면의 진실보다 겉볼안의 거짓이 활개를 치는 일은 의외로 부지기수다.
   인간관계만 하여도 그렇잖은가. 오히려 솔직하고 진실한 마음을 내비치면 별종으로, 혹은 외계인 취급 받기 예사다.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면 색안경 끼고 바라보기 일쑤다. 대화를 할 때도 그렇다.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보다 무조건 달콤한 말로 속내를 한껏 포장해 해야 사람 좋다는 소릴 듣는다. 바른 말, 쓴 소리를 했다하면 이 또한 경계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세태니 진실보다 거짓이 난무할 법 하다.
   요즘 트로트를 듣는 재미로 산다. 비록 대중가요지만 가만히 그 가사를 음미해보면 시적 표현이 전부다. 가사들이 우리네 인생사를 대변하는듯한 느낌이라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물론 사랑, 혹은 이별이 가사의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한 곡의 대중가요 가사 속엔 세태를 겨냥한 내용도 내포돼 공감이 깊다. 무엇보다 애조 띤 음색을 듣노라면 코끝이 찡하고 눈시울이 적셔질 때도 있다. 한편 경쾌한 대중가요는 우울함마저 씻어주는 힘을 내재하기도 했다.
   이즈막 내가 심취한 대중가요는 모 가수가 불러 인기몰이를 한, '니가 왜 거기서 나와'이다. 이 가사 속엔 사랑하는 사람의 이중적인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가사 첫 구절엔 다 알다시피 사랑하는 남자가 여인에게 피곤할 테니 잘 자라고 곰살맞게 전화를 해준다. 하지만 곧이어 이 가사 속엔 사랑하는 여인의 감쪽같은 거짓말이 등장한다. 이에 속은 남자의 아픈 마음이 여실히 표출되었다. 발등을 찍혔다는 가사가 그것이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이 피곤하다고 하여 '혹시 아픈가?'하는 걱정까지 한다. 이 염려는 헛수고였다. 강남 어느 클럽 앞을 남자가 우연히 지나치다가 피곤해서 일찍 자겠다던 여인이 어느 남자 팔짱을 끼고 그곳서 나오는 장면을 목격한다는 내용이 아니던가. 즉 이 가사 속의 여인은 이 것을 목격한 남자한테 교회 오빠랑 클럽 왔다고 둘러댔나 보다. 불교라고 한 여인이 교회 오빠랑 왔다며 자신의 거짓말을 변명하려 한 내용에 이르러선 이 정도 거짓말쟁이라면 소위 '꾼'은 못 된다는 생각마저 든다. 금방 탄로 날 거짓말을 하였잖은가. 완벽한 거짓말쟁인 천연덕스럽게 표정 한곳 흐트러지지 않은 채 상대가 진실처럼 믿게 하잖은가
   얼마 전 구미에서 여아 아기의 시신이 발견되는 인면수심의 사건이 보도만 해도 그렇다. 처음엔 그 아기 어머니로 이십 대 여성을 구속했다. 진실은 엄혹했다. 얼마 안 돼 아기의 어머니로 지목됐던 여성은 다름 아닌 아기와 자매 지간이었다. 즉 구속된 이 십 대 여성의 어머니가 외도로 낳은 아기란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이쯤 되면 거짓말이 천륜도 저버리는 일에 한 몫 거든 셈이다. 물론 불륜으로 아이를 임신한 죄는 물어 마땅하다. 그렇다하여 자신의 부도덕한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고귀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했단 말인가.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학가였던 헤르더는 인간을, '결함의 동물'이라고 일렀다. 아무리 인간이 불완전하다 하여도 어머니는 누구인가. 자식을 위해서라면 몸 사리지 않고 뜨거운 불 속이라도 뛰어들 모성을 지닌 사람 아니던가. 비록 거짓이 주인 노릇을 하는 세태라고 하지만 숭고한 모성마저 그것의 너울로 완벽하게 가리려고 든다면 하늘이 분노할 일이다.
수필가 김혜식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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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