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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 생활칼럼] 잃어버린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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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혜식 작성일21-04-2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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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혜식부모의 심장은 자식이다. 부모로서 자신의 심장을 잃은 여인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리는 얼마 전 일이다. 침잠된 기분을 전환하고 싶었다. 마을 앞 호숫가를 거닐었다. 이 때 저만치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 비를 맞으며 망연히 서있는 한 여인이 눈에 띠었다.
   때마침 가는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다. 우산을 세차게 때리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우산을 받쳐 주기 위해서다. 초점 잃은 눈으로 호수만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다. 인기척을 느낀 그녀는 나를 돌아 본 후 화들짝 놀란다.
   그리곤, " 어머나, 내 정신 좀 봐. 내가 우산을 어디다 두었지?" 라고 주위를 기웃 거리며 자신의 우산을 급히 찾는다. 우산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다.
   자신이 썼던 우산조차 손에서 잃어버린 줄도 모른다. 빗속을 정신없이 방황한 듯하다.
   말없이 그녀에게 우산을 받쳐주었다. 그녀는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고맙습니다. 요즘 가끔 정신이 오락가락 합니다. 이런 증세가 심해 치매가 아닌가 싶어요" 라고 말한다. 자세히 보니 온몸이 비에 젖은 그녀다.
   안쓰러운 마음에 더욱 그녀 곁으로 바짝 다가가 우산을 받쳐 주었다. 그녀는 애써 우산 속에서 몸을 뺀다. 이미 자신의 옷이 비에 다 젖었노라고 한사코 우산 쓰기를 거절한다.
   빗속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녀다. 필경 무슨 사연이 있을 성 싶었다. 비록 초면이지만 그녀에게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말을 건네자 의외로 그녀는 별다른 경계심이 없다.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토로 한다. 얼마 전 사고로 아들을 졸지에 잃었다고 한다. 충격 탓인지 이렇듯 비가 오는 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집을 뛰쳐나온다고 했다. 아들과의 추억이 깃든 곳을 찾기 위해서란다.
   그녀는 청춘에 남편을 병으로 잃었다고 했다. 홀로 온갖 고생을 하며 어린 아들을 양육 했단다. 이 말을 꺼낼 땐 한숨을 땅이 꺼져라 내쉰다.
   그동안 돈벌이가 되는 일이라면 힘든 일도 마다 하지 않았단다.
   건물 청소부, 파출부는 물론 건설 현장에서 질통도 져봤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들이 공부도 썩 잘하고 말썽도 안 부려 그 모습에 힘을 얻었다고 했다. 그런 아들을 위하여 온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였단다. 그녀에게 자식은 인생의 전부였던 셈이다.
   그녀는 말을 하다말고 갑자기 가슴을 쥐어뜯는다. 그리곤 자식을 잃었기에 자신은 심장이 없는 거나 매한가지란다. 숨을 쉬고 살되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의 말에 언젠가 보았던 의학 드라마 한 장면이 갑자기 떠올랐다. 화면 속에선 의식을 잃은 환자가 응급실로 실려 온다. 이를 본 의사가 다급히 환자 가슴에 전기 충격을 가한다.
   이 때 환자는 온몸이 들썩일 정도로 강한 전기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오실로스코프에 표시되는 심장박동은 좀체 돌아올 줄 모른다. 환자는 끝내 심정지로 인하여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이로보아 생명의 박자는 심장이다.
   그녀에게 아들은 자신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들 일로 말미암아 삶의 의욕을 잃었으니 죽은 사람이나 진배없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이 말을 듣자 그녀가 엄청난 고통을 지녔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렸다. 친정어머니도 직장에서 촉망받던 막내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었잖은가.
   이 고통으로 어머닌 치매까지 앓고 있을 정도다. 자식을 잃은 슬픔을 어찌 필설로, 말로 다 형언 하리오. 인간사에서 가장 충격이 크고 슬픔의 늪에 빠질 때는 사랑하는 자식을 죽음의 손아귀에 빼앗길 때다.
   여인은 남편의 훈육 없이 아들을 홀로 키웠다. 그럼에도 그녀의 아들은 매사 반듯한 청년으로 성장 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틈틈이 카페,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아들이었다.
   힘들게 번 돈으로 그녀의 속옷이며 화장품 등을 사주던 다정다감한 아들이었다. 여인이 현재 목에 두른 스카프도 아들이 고등학교 때 편의점에서 일하여 번 첫 월급으로 사 준거란다.
   고운 빛깔의 머플러다. 그것을 손으로 매만지며 말을 할 때 마치 아들의 얼굴이라도 쓰다듬는 듯 그녀 눈빛이 아련해졌다. 어느 사이 그녀 눈가에 물기가 번졌다.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아들은 든든한 울타리였다. 세상 모진 풍파와 맞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또한 삶의 고초를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었다.
   그날 여인의 크나큰 아픔을 무슨 말로 어찌 위로해 주어야 할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뼈를 깎는 듯한 그 슬픔을 미처 헤아리지 못한다. 그녀는 이제라도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고 했다.
   그녀와 헤어지며 돌아올 때 못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비바람에 벚꽃이 떨어져서 허공에 무수히 흩날리고 있었다. 벚꽃 나무 앞을 지나칠 때 일이다.
   나무 아래 비에 젖은 새 한 마리가 추운 듯 온 몸을 오들오들 떨고 있다. 그 작은 새 위에 종전에 보았던 여인 모습이 애처롭게 겹쳤다. 걸음을 멈춘 채 한참을 그 새를 바라보았다.
수필가 김혜식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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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