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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문화칼럼] 이상과 현실의 딜레마, 달과 6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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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20-05-27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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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서유진이 소설은 화가 폴 고갱의 전기를 왜곡해서 쓴 것이라 해서 한 동안 비난의 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고갱의 그림값이 엄청나게 뛰어올랐다. 사실 소설을 읽다 보면 고갱과 고흐를 염두에 두고 쓰지 않았나하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고흐의 비극적 생애는 널리 알려져 있다. 순진한 고흐는 파리의 모던보이인 고갱에게 빠져 동생 테오의 물질적 도움으로 9주간 함께 살아가지만, 고갱에게 상처 받은 고흐는 정신착란으로 귀를 자르고, 정신병동에 갇히고,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친다.
     고갱처럼 주식 중개인이었던 차알스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던 어느 날, 아내와 자식을 팽개치고 집을 나가 파리에서 그림을 그린다. 죄의식도 없다. 그의 생각은 오로지 그림뿐이다. 평범한 화가인 더어크 스트루브는 괴상한 그림을 그리는 스트릭랜드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하고 그를 흠모한다. 그러나 아무도 스트릭랜드의 천재적인 그림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림은 한 점도 팔리지 않는다. 궁핍으로 오랫동안 먹지 못한 채 열병에 걸린 스트릭랜드를 더어크 스트루브가 자기 집으로 데려와 돌봐주자고 할 때 아내는 펄펄 뛰며 반대했다. 결국 행복했던 이 가정이 스트릭랜드를 데려옴으로써 파멸에 이르는데….
     더어크 스트루브를 편의상 더어크라고 부르기로 하자. 심성이 착하고 자존감이 결여된 더어크는 스트릭랜드에게 주거 겸용인 자신의 아틀리에를 빼앗기고 밖으로 나돌며 번민한다. 스트릭랜드가 자기 혼자 아틀리에를 사용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스트릭랜드의 뻔뻔스러움에 항의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던 어느 날, 결심을 굳힌 더어크는 이제 열병이 나았으니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를 요청한다. 이때 아내가 스트릭랜드를 사랑하게 되었다며 그를 따라 집을 나가겠다고 한다. 조신하게 보이던 아내가 당당하게 사랑을 선언했고, 스트릭랜드는 당사자인 아내의 의사에 맡긴다며 냉담함을 보인다. 정숙했던 아내가 완전히 돌변하자 가련한 더어크는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집을 내주고 자신이 집을 나간다. 그러나 매일 아내를 만나고 싶어서 시장 다녀오는 아내를 기다리고,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잘못한 점이 있으면 너그러이 용서해달라는 둥, 당신을 깊이 사랑하니 돌아와 달라고 애걸한다. 이런 경우 여자가, 조금도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대하는 태도만큼 가혹한 것은 없다. 아내는 남편의 얼굴을 힘껏 한 대 갈겨주고는 아틀리에로 들어가 버렸다.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아내와 자식을 팽개치고 떠나온 스트릭랜드에게 더어크의 아내 역시 자유를 묶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스트릭랜드는 곧잘 '제발 나를 혼자 내버려 두라'고 했으니 짐작이 된다. 도덕심을 가지고 가정을 지키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스트릭랜드의 예술적 열정과 예술지상주의적인 삶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고, 분노마저 느낄 것이다. 스트릭랜드는 현실의 궁핍함은 참을 수 있으나 자유로운 예술활동을 구속하는 가정과 여성에 대해서는 혹독했다.
     결국 스트릭랜드가 더어크의 아내를 떠났고 아내는 극약을 마시고 죽는다. 완전히 절망한 더어크는 파리를 떠나 고향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그 후 스트릭랜드는 타히티 섬으로 가서 궁핍한 생활을 하면서 조금만 돈이 모이면 숲으로 들어가 그림에 몰두한다. 곧 아타라는 소녀와 함께 살며 자식도 가지는데, 아타는 그가 나병에 걸려 죽을 때까지 보살폈다. 아타는 유언에 따라 신비로운 그림이 그려진 집을 불태운다. 타히티 사람들은 그를 강직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로 증언했다. 소설 속 화자도 그를 역겨우면서도 위대한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고독했고, 그림에만 온 열정을 쏟았고, 그림을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시킬 뿐 아니라 남까지도 희생시켰다. 소설 초반부에서 보여준 그의 뻔뻔스럽고 역겨웠던 인상은 위대한 예술혼에 의해 점차 옅어짐을 느끼게 된다. 그는 나병으로 몸이 뭉개져 가면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였다. 덧없는 인생이지만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는, 부정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작가의 인생관이 스트릭랜드에게 심어진 듯하다. 현실은 보잘것없는 6펜스이지만, 달을 바라보며 꿈꾸기를 쉬지 않는 스트릭랜드의 예술혼에 경외감을 느낀다. 하지만 더어크의 사랑도 간과할 수 없다. 평범한 화가인 더어크는 어릿광대 같지만 아내를 사랑했고, 인정이 많고 헌신적이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이다. 스트릭랜드를 찾아가 '우리 둘 다 아내를 사랑했으니 고향으로 가서 함께 살자'고 하는 더어크야말로 진실로 원수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의 사랑도 위대한 예술 못지않게 경이롭다.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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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