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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빠뚜싸이서 내려다 본 라오스인들의 심성과 고유·온전한 정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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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20-05-2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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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독립기념탑 빠뚜싸이.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아침이 더디게 밝았다. 건설부 장관은 프랑스식 빌라의 관저 발코니를 들락거리며 줄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전날 현장 감독관의 급하게 달려와서 올린 보고는 신생 독립국가 라오스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어서 참담한 심정이었다. 20세기 초반 프랑스와 일본의 침탈에서 독립하기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은 라오스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독립기념탑을 건립하기 시작했지만 중간쯤 올라가다가 시멘트가 동이 나버렸다는 것이었다. 그 건축물이 새롭게 출발하는 라오스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잘 아는 정부의 고위 관료가 겪는 갈등은 적지 않았다.
 
  ◆ 공항 건설 신멘트로 만든 독립기념탑

  밤새 전전반측하다가 떠오른 묘안이 하나 있었다. 마침 비엔티안 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미국에서 원조를 받은 시멘트가 공항 건설 현장에 야적돼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그것을 우선 사용하자는 건의를 대통령에게 올릴 참이었다. 물론 교통부 장관의 저항은 있겠지만 결정은 절대적으로 대통령의 몫이었다.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한 건설부 장관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날이 밝으면 메콩강변에 시멘트로 지어진 흰색 대통령궁으로 달려갈 참이었다. 두 갑의 담배를 다 태워도 동녘이 밝아오지 않았다. 장관은 이미 제복을 갖춰 입은 상태였다.

  이른 아침부터 집무실로 달려온 건설부 장관의 제안을 들은 대통령은 잠시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이 가난한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막막하기도 했지만 라오스 발전의 동력인 공항이 우선인지, 국가의 정신적 상징물을 지어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이 우선인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라오스의 영혼과 정신을 되찾지 않고 경제적 발전을 먼저 고려한다면 국가의 미래는 사상누각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대통령은 교통부 장관을 불렀다. 교통부 장관이 대통령궁에 도착하기까지 안절부절한 것은 건설부 장관이나 대통령이나 마찬가지였다.

                      ↑↑ 빠뚜싸이의 정면에 새겨진 불교장식.   

  교통부 장관은 건설부 장관의 제안을 듣고 나서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도 두 사람의 뜻에 흔쾌히 동의한다는 것이었다. 독립기념탑인 빠뚜싸이는 그렇게 지어졌다. 196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래서 라오스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 받은 현대사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빠뚜싸이를 '수직 활주로'라고 부른다. 다소 냉소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아픔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낸 라오스인들의 진솔함과 순수성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 외양은 프랑스풍, 내부는 라오스의 혼

  빠뚜싸이는 비엔티안의 남과 북을 잇는 가장 넓은 간선도로의 한 중간에 우뚝 솟아 있다. 시멘트로 만든 이 건축물은 7층 건물의 높이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시멘트의 부식으로 검버섯이 피어나 우중충한 모습을 보이지만 그 자체로 라오스의 분위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빠뚜싸이는 비엔티안의 랜드 마크다. 북으로 멀리 대통령궁이 보이고, 바로 밑에는 정부종합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정부의 관료들은 날마다 빠뚜싸이를 쳐다보면서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뒤 당당한 인도차이나 반도의 구성원으로 발전하는 데 빠뚜싸이의 정신적 훈수가 크게 작용했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 빠뚜싸이 내부 벽면에 부착된 작은 불상   

  라오스인들의 상상력은 비상하다. 프랑스와 독립을 위해 싸우다 숨진 영혼을 위무하기 위해 지은 탑의 모양을 프랑스 파리에 있는 개선문과 흡사하게 만든 것이다. 도대체 이건 무슨 의미일까. 우리나라의 경우 민족정기를 되찾겠다는 의미로 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국민적 합의 없이 한순간 허물어 버리지 않았던가. 13세기에 세워진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의 경우를 본다면 라오스 정부의 상상력과 대한민국 정부의 졸삽한 사관이 극명하게 대비된다. 스페인은 한 때 안달루시아 지방을 지배했던 이슬람 왕국이 세운 알함브라를 허물지 않고 고스란히 보존하면서 외세를 극복한 민족적 우수성을 반면교사하고 있다. 라오스 정부 관료들은 멍청이들만 모인 것이 아니다.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을 지배했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과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숭고한 독립투사들의 거룩한 희생을 되새기는 일거양득을 노린 것이다. 후진국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면 배워야 할 대목이다.
                     ↑↑ 7층 건물 높이의 빠뚜싸이 옥상에 이르는 계단 문. 라오스 전통양식의 건축물로 만들어졌다.   

◆ 가난한 나라가 지킨 정신문화

  화강암이 아닌 시멘트로 만든 빠뚜싸이는 외양만 개선문을 닮았지만 내부에 들어가면 라오스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벽을 뚫어 외부를 볼 수 있게 한 창은 라오스 불교의 전통양식을 활용했고 천장과 벽면에는 비쉬뉴, 브라마, 인드라 같은 힌두교 신들과 라마야나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조각해 놓았다. 또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면 불교사원에 온 듯 숙연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여기에다 내부의 공간에 다양한 공예품과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도 입주해 있다. 7층 높이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서도 결코 무료하지 않은 구조다.

                      ↑↑ 빠뚜싸이를 배경으로 관광객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라오스의 사진사들.   

  빠뚜싸이의 정상에 오르면 비엔티안의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워낙 작은 도시이므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비포장 도로였던 간선도로가 말끔하게 포장돼 있다. 사람들은 독립기념탑 위에 올라서서 가쁜 숨을 내쉬며 깊은 생각에 빠져본다. 빠뚜싸이를 둘러싼 정원과 분수대는 2004년 중국이 만들어 준 것이다. 국제공항을 일본이 건설해 준 것과 마찬가지다. 경제적 잠입이다. 나라를 지키려 했던 호국영령들을 기린 탑 위에서 라오스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이 가난한 나라가 오랜 세월 그들만의 온전한 정신과 문화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활로를 뚫어야 할까. 공항 활주로를 건설하려던 시멘트로 만든 독립기념탑에서 라오스 사람들의 정신이 하늘로 비상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들의 아름답고 착한 심성과 문화를 아끼는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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