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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문화칼럼] 끼리끼리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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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영미 작성일20-06-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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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영미농로에 레미콘 차가 다시 줄을 잇는다. 동네를 감싸던 오른쪽 산이 깎인 건 서너 해 전이다. 주춤 멈추는가 했더니 올봄부터 본격적으로 집을 짓는다. 붕어빵만 같은 틀에 찍어내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집도 찍어내듯 닮았다. 가뜩이나 높은 지대에 이층으로 지은 집은 동네를 내려다보듯 도도하다. 굳이 뒤꿈치를 들고 목을 뽑을 필요 없이 살던 단층집들이 고개를 외로 틀고 올려다보아야하는 형상이 되었다. 높은 곳에 집은 내 집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것만 같다. 당장 울타리를 치고 창에 커튼을 달아야 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든다.
 
  소에게 먹이를 주면서 갑자기 불안하다. 가스 처리를 하여 발효시킨 먹이에서 나는 냄새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도시에서는 층간소음으로 시비가 붙는다던데 여기서는 냄새로 고소를 당하면 어쩌나! 지금껏 하지 않던 걱정이 하나둘 스멀거린다.
 
  우리 동네는 외진 곳이라 가축을 키우는 사람들이 모여 산다. 특히 소 위주다. 집집마다 원래 한두 마리씩 키우던 것을 규모를 넓히고 또 타지에서 찾아들어 형성이 되었다. 그래서 항상 소 울음과 농기계가 일하는 소리가 난다. 살던 사람들이야 익숙도 하거니와 많고 적다뿐이지 내남없이 가축이 있으니 웬만한 냄새나 소음 같은 불편은 참아낸다.
 
  옆 동네는 닭동네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닭을 많이 키웠다. 산업화 바람이 불어 너도나도 도시로 떠날 때 고향을 지키야 했던 아버지들이 이룩한 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계란을 흔하게 먹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 아버지들이 닭을 키우는 덕분으로 마음껏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닭 동네가 이제 닭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가 농사짓기 어려운 다랑이밭을 개발하면서였다. 밭에는 서양의 전원풍경에나 나올법한 집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어느덧 산등성이를 전부 점령했다. 집은 동남쪽을 향해 짓는 줄 알았는데 석양을 바라보는 집도 멋이 있을 수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넓은 정원에 그득한 꽃을 보며 은근 부러워했다. 들리는 말에는 의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판검사들이 주말에 와서 놀다가는 별장이랬다.
 
  문제는 여름에 터졌다. 마당에 널어서 말리는 닭분뇨를 보아버린 것이다. 분뇨는 닭 농가의 중요한 수입원중 하나이다. 포대에 담겨 도시사람들이 가꾸는 화분이나 텃밭에 거름으로 팔려나간다. 마당에 널어 저어가며 말리니 당연히 냄새가 난다. 민원이 넣어졌고 축산폐기물법과 환경보호법에다 또 무슨무슨 코걸이 같은 법을 어겨 폐농을 할 지경에 이르렀다. 와중에 감옥살이를 한 사람도 생겼다.
 
  사실 닭 분뇨만큼 지독한 냄새도 드물 것이다. 오랫동안 살던 이도 코를 쥐고 지나친다. 모여든 파리 떼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평생을 산 방식이었고 새로 시설을 갖추기에는 힘이 달렸다. 기한을 주며 시정조치를 계도했지만 결과는 뻔히 정해져있었다. 일부는 외진 곳을 찾아 옮겨가고 나머지는 아예 접어버렸다. 동네사람들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형국이었다. 그래서 닭 동네는 닭도 잃었지만 오래 살던 사람들도 잃었다. 이런 사태가 우리 동네인들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겠는가. 자라보고 놀랐던 가슴이라 솥뚜껑만 보고도 미리부터 심장이 벌렁벌렁 뜀뛰기다. 당장 터를 옮겨올 것 같았던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에 산다. 뿐만 아니다. 산은 더 깎였고 이제는 숙박시설 같은 큰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적당한 볕과 바람이 들을 훑는다. 모내기를 한 논을 살핀다. 밤사이 안부가 궁금하다. 무논에 발을 내린 모는 뾰족하니 푸르다. 어린 것은 무엇이나 예쁘다지만 모도 마찬가지다. 사랑스럽기만 하다. 문득 이 모가 자라 벼가 되는 것을 몇 번이나 더 볼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논이 언제까지 논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산이 집터가 되듯 논도 길이던 공장터던 곧 모습을 바꾸리라. 그럼 농사밖에 지을 줄 모르는 농부들은 어디로 가야할까. 우리 동네보다 더 외진 곳이 우리나라에 남아있기는 하려나. 그냥 이대로 끼리끼리 살게 놔두면 좋겠다는 턱도 없는 바람을 하다 피식 웃고 말았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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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