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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밭 둘러싸여 주고받는 情이 두터운 마을 `읍천 2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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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06-21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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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읍천2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읍천2리는 과거 마을 언덕배기에 대나무밭이 무성했다고 해서 '대밭골', 즉 죽전(竹田)마을이라고 불리게 됐다. 현재에도 마을 곳곳에 대밭의 흔적이 드문드문 남아 있어 마을의 전통을 짐작하게 해 준다. 빼곡하던 대나무들은 6·25때 북한군이 주둔해 불을 질러버렸다고 한다.

  죽전마을은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반반이다. 또 더러는 농업과 어업을 겸업하는 이들도 있었다. 주민들은 방문만 열면 마치 그림처럼 펼쳐지는 바다를 보면서 항상 희망을 가지고 살았다. 신안주씨(新安朱氏) 집성촌이었던 이 마을에는 부잣집이 많았다. 과거에는 약 80여 가구가 신안주씨였지만 지금은 20여 가구만 남았다. 너른 논밭을 소유한 주씨 집안과 타성받이 주민들은 비교적 편하게 살았다. 바다에도 참전복, 소라, 해삼, 돌미역 등이 많아 수입이 만만치 않았다.

                      ↑↑ 죽전마을의 최고령자인 박덕선 할머니와 주진도 이장이 다정하게 앉아 환담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농사를 짓던 주민들이 이제는 대부분 노령층으로 접어들었고 젊은 사람들은 인근 월성원전과 울산의 기업으로 직장생활을 해 폐농한 땅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과거의 풍요로웠던 살림살이가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쪼그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예전에도 그랬지만 평화롭고 인정스럽고 주민들끼리 주고받는 정이 두터운 마을임에는 변함이 없다"고 자랑했다.

                      ↑↑ 제1발전소 안전부 직원이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주진도 이장은 "마을 전체에 26개의 CCTV를 달아 범죄가 없고 안전사고를 방지하고 치매노인을 안전하게 보살필 수 있는 마을"이라며 "월성원전과 가장 가까운 마을이어서 원전과 공생하는 방식을 주민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 김영심(95)씨는 제주도에서 죽전마을로 시집와 56살 때까지 해녀생활을 했다. 김씨는 "고향에서 물질을 배워 시집와서도 줄곧 바다 밑에서 일했다"며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해산물이 풍부해 참 살기 좋은 마을이었다"고 술회했다.
 
  김씨는 오래전 남편을 저 세상으로 보내고 6남매를 해녀 일을 하면서 교육시키고 길렀다. 김씨는 "6남매와 시동생, 시어머니까지 모두 바다 밑의 해산물을 잡아 봉양했다"며 "그만큼 죽전마을은 물밑이나 땅위에서 나는 생산물이 풍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 마을의 할머니들이 마을 정자에서 시집와서 고생하던 젊은 시절을 얘기하고 있다.   
  이준연(88)씨는 일본에서 초등학교 5학년까지 다니다가 해방이 되면서 고향 양북면 봉길리로 돌아왔다. 18살에 죽전마을로 시집온 이씨는 "남편이 짓는 농사만으로는 살 수 없어 앞바다에서 난 생선을 반티(함지)에 이고 양북, 입실, 호계장으로 팔러 다녔다"며 "그때 장을 오가며 골병든 것이 지금까지 남아 삭신이 쑤신다"고 말했다.

                      ↑↑ 죽전마을에 남아 있는 대나무밭의 흔적.   
  읍천2리 죽전마을에는 220가구에 45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월성원전 사원사택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불어났다. 1970년대 초반 월성원전을 짓기 이전에는 정치망 어장이 성업이었는데 그물을 건져 올리면 바다 전체가 멸치라고 할 만큼 풍어를 누릴 때도 있었다. 그때는 상어와 돔배기(돔발상어)가 많이 잡혀 인근도시에 팔려나갔다. 그래서 그런지 경주와 인근 도시의 제사상에는 지금도 반드시 돔배기가 올라간다.

  죽전마을의 최고령자는 박덕선(96) 할머니다. 아직도 허리가 곧고 치아가 고르며 눈과 귀가 밝아 아침부터 농사일을 하는 박씨 할머니는 "시집와서 이날까지 논밭에서 일하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말했다. 박씨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는 낮에는 논에서 일하고 밤에는 길쌈을 했다"며 "지금은 힘에 부쳐 논은 묵혀두고 있고 밭에서 콩과 들깨, 팥, 고추 등을 키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멀쩡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죽전마을의 맑은 바닷바람과 이웃들의 인정 때문일 것"이라며 "양남에서 죽전마을이 가장 고요하고 정이 넘치는 마을"이라고 덧붙였다.

                      ↑↑ 죽전마을 앞바다의 보릿돌. 과거에는 이곳에서 소금을 구웠다고 한다.   
  주진도 이장은 이 마을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주 이장은 "마을에 있는 파도소리 해탈길에 공원을 조성하다가 중단돼 있다"며 "이 공원이 얼른 마무리 된다면 죽전마을을 찾는 분들이 많아져 주민생활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예전에 소금을 굽던 보릿돌이 이 마을의 명물인데 방파제에서 보릿돌까지 다리를 놓게 된다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죽전마을의 자매부서는 제1발전소 안전부다. 유동욱 차장은 "월성원전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읍천2리 주민들은 원전에 매우 협조적이고 이해심이 많다"며 "이들 주민을 위해 어르신들의 생필품을 제공하고 소소한 고민거리도 서로 나누며 살아간다"고 말했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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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