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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석 특별기고] 상주의 항일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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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장 강영석 작성일20-06-23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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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주시장 강영석상주시는 뿌리가 깊은 '역사 도시'입니다. 경주와 상주의 머리글자를 따 경상도의 어원이 됐고, 고려시대 지방행정기구인 8목 중 상주목이 있었던 곳입니다.
 
  상주는 '호국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초기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왜군과 맞선 곳도 상주입니다.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 1만7000명을 800여 명이 대적하다 모두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화령장 전투도 있습니다. 6·25전쟁 초기 남으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곳이 화서면 화령장입니다. 덕분에 국군은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화서면 주민의 신고에서 시작된 화령장 전투는 대한민국을 살린 중요한 전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도 호국 정신은 빛났습니다.
 
  상주 이안면 출신인 채기중 의사는 1915년 박상진 의사와 함께 대한광복회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이후 일본인 광산을 습격해 군자금을 확보하고 친일 부호를 처단하는 등 민족적 각성과 국권 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918년 조직망이 드러나면서 일제에 검거돼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했지만, 그의 정신은 우리 가슴 속에 살아있습니다.
 
  아버지 권준 장군과 아들 권태휴·며느리 민영숙을 비롯해 독립운동에 투신한 가족도 많았습니다.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을 써 을사늑약을 통렬하게 비판한  위암 장지연도 상주가 낳은 애국지사입니다.
 
  함창 출신인 전준한·전진한 형제가 중심이 돼 벌인 협동조합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1927년 1월 상주 함창에서 첫 번째 협동조합을 설립했고 팸플릿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며 조직을 확대에 힘을 쏟았습니다.
 
  중간 이윤 철폐, 고리대 금지 등 식민지 착취를 배제하고 농민의 경제적 권익을 옹호하는 운동을 벌였지요. 1928년에는 충청도와 경상도에 설립한 협동조합이 22개에 조합원도 5000명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이는 농민의 궁박한 생활을 극복하는 운동이자 일제의 식민지 수탈에 대항했다는 점에서 항일 농민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3·1운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19년 3월 23일 상주 장날 주민 500여 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습니다. 일제에 주권을 빼앗긴 조국의 현실에 비분강개하던 젊은 학도들이 중심이 됐습니다.
 
  그리고 이안면 소암리, 화북면 장암리와 운흥리, 화서면 신봉리 지역을 중심으로 관내 전 지역에서 크고 작은 독립만세운동을 펼쳐 수백 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강용석·박인옥·석성기 등 많은 이들이 옥고를 치렀습니다. 
 
  또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은 조명강습소·대성강습회 등 교육기관을 설립해 항일 독립정신을 고취시켰습니다. 이들의 노력이 오늘의 상주, 대한민국이 있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상주시와 시민단체는 엄혹한 일제 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관련 조례를 만들고 다양한 행사도 열고 있습니다.
 
  특히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복원하고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당시 협동조합운동 발상지인 합창읍에 '협동조합 역사문화관'을 만들고 있습니다. 상주시는 앞으로 항일독립운동 사례를 발굴하고 그 정신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상주시장 강영석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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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