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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부터 역사적 사실 간직해 유서 깊다 손꼽히는 `나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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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작성일20-06-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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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산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나산리(羅山里)는 신라 초기부터 중요한 역사적인 사실을 간직한 양남면에서 가장 유서깊은 마을로 손꼽힌다. 신라 4대 탈해왕의 탄생지와 인접해 있고 경순왕이 후백제의 침략을 피해 숨어든 피난처가 있다. 또 조선초 사육신의 한 사람이었던 백촌 김문기의 6대손 송와공 김제학이 문중의 오랜 은둔생활 끝에 정착한 곳이며 1973년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월성원전이 들어서면서 획기적인 변환을 겪은 마을이다.

  나산리는 큰마을, 텃 , 지곡, 새마을 등 4개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으며 현재 193가구에 39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어 삶을 영위했던 마을로 농토의 90%는 논이고 밭은 10%에 이른다. 지금은 논농사의 상당부분이 폐농된 상태고 밭농사로 부추와 블루베리를 특용작물로 재배하고 있다.

                      ↑↑ 나산리 최고령자 김인달(93) 할아버지와 부인 박봉래(90) 할머니를 찾은 김정원 이장이 안부를 묻고 있다.   
  상라리쪽으로 향하다가 왼쪽으로 꺾어지면 새마을이 나오고 새마을에서 약 4km 정도를 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신라 선덕왕 때 세워진 보덕암이라는 고찰이 나온다. 보덕암은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 후백제의 침략을 피해 이 절 본당 옆에 있는 동굴로 피신해 환란을 면했다는 전설이 전해 국구암이라고 불렸다가 훗날 보덕암이라고 불렀다.

  조선 초기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고, 왕이 되자 이에 불복하고 단종 복위에 힘을 쓰다 목숨을 잃은 사육신의 한 사람으로 1982년 국사편찬위원회에 의해 현창된 벽촌 김문기의 6대손인 송와공 김제학이 조정의 핍박을 피해 오랜 세월 떠돌며 은둔하던 문중을 이끌고 정착한 곳이 이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에는 백촌 김문기를 봉향한 나산서원이 있다.

                      ↑↑ 김녕김씨 입향조 송와공 김제학이 나산리에 정착한 사실을 입증하는 지석. 이 지석은 2019년 발굴돼 나산서원으로 옮겨졌다.   
  입향조 김제학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김녕김씨 집성촌이기도 한 나산리는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체 150 가구 중 김녕김씨가 130 가구 정도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현재는 약 70가구만 남아 있다.

  나산리는 인근 울산과 경주시내로 나가기에 가장 애매한 위치에 있다. 월성원전이 들어서고 도로가 확장되기 전에는 자갈로 만든 비포장 도로였으며 60년 전부터 버스가 생기긴 했지만 하루 2차례 정도만 운행돼 주민들은 걷거나 소달구지를 몰고 마을에서 생산된 콩, 팥, 잡곡, 쌀 등을 싣고 울산과 경주의 시장으로 내다 팔았다.

                      ↑↑ 신라 마지막 경순왕이 후백제의 침공을 피해 은신했다는 보덕암의 동굴.   
  당시 도시의 시장을 오갔던 김수원(82)씨는 "당시에는 울산까지는 4시간, 경주까지는 5시간이 걸려 새벽에 출발해 시장에 나가 농작물을 팔고 집에 돌아오면 깊은 밤이 됐다"며 "지금은 도로가 워낙 잘 뚫려 울산 동구에 있는 울산대학교 병원까지 30분이면 갈 수 있으니 세상이 개벽한 셈"이라고 말했다.

  김정원 이장은 월성원전이 생기면서 나산리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김 이장은 "1973년 월성원전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노동자들이 대거 마을로 유입됐으며 지금까지 월성원전과 관련된 일을 하는 주민들이 많다"며 "도로가 뚫리고 수입이 늘어나면서 나산리의 환경은 엄청나게 변화했다"고 설명했다.

                      ↑↑ 1972년에 실시된 나산리 최초의 새마을사업 현장. 마을 집들의 담장을 돌담으로 교체했다.   
  김진선 김녕김씨 문중회장은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백촌 할아버지의 충렬의 혼은 후손들이 잊지 않고 지켜나가고 있다"며 "나산리를 충의와 효행의 고장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나산리의 최고령자는 양남면 부면장을 지냈던 김인달(93) 할아버지다. 김 할아버지는 "나산리는 비록 궁벽한 시골마을이었지만 역사적으로, 정신문화적으로 전통이 있는 마을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며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삶의 환경이 바뀌었지만 마을이 안고 있는 역사적 자부심은 뿌리가 깊다"고 자랑했다.

                      ↑↑ 김진선 김녕김씨 문중회장(가운데)이 김정준 문중이사(오른쪽), 김정원 이장과 함께 나산서원을 찾아 문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월성원전의 나산리 자매부서는 경영지원실 총무부다. 현일용 차장은 "나산리는 월성원전과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 중 하나로 원전의 사업에 대한 이해심이 매우 넓은 마을"이라며 "역사문화적 전통이 깊은 마을에 대해 직원들은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생 협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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