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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특별기고] 박혁거세거서간과 내물왕은 위대한 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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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박사·새화랑유치원 이사… 작성일20-07-02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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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학박사·새화랑유치원 이사장 김영호교육은 문명의 핵심적인 내용이며, 문명의 발생과 성장에는 교육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경주에 남아 있는 분황사,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 석굴암, 첨성대, 봉덕사종, 대릉원, 금관 등은 신라인의 예지가 담긴 창조적 교육문명이다.
 
  불국사는 큰 기와집이고, 다보탑과 석가탑은 정원의 장식물, 석굴암은 돌부처의 지하실, 첨성대는 돌로 쌓아놓은 모형, 포석정은 향연을 위한 야외놀이터, 봉덕사종은 금속으로 만든 과시용 종, 대릉원은 공동묘지, 금관은 왕들의 액세서리 등으로 단순히 볼 수 없는 문명의 실체적 표상들이다. 이들 표상에는 신라인이 후세를 위해 남겨 놓은 수많은 의미를 담은 찬란한 교육문명이다.
 
  그 수많은 의미가 오늘의 경주를 있게 한 것이고, 대한민국이 반만년의 역사를 있게 한 신라교육의 자랑스러운 문명사(文明史)일 것이다.
 
  오늘날 AI와 IT기기는 인간이 창조한 교육문명의 놀라운 산물이다. 이것은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인간의 하인이 되어 새로운 문명사에 기여하고 있지만 신라인이 남겨 놓은 유물과 비교해 볼 때 신라인의 문명사적 작품에는 현대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우수한 창조적 기술능력이 내재 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삼국유사'에 육부의 조상들이 각기 그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 언덕에 모여 의논하기를 "우리들은 위로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없는 까닭에 백성들이 모두 방종하여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니, 어찌 덕 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고 나라를 세워서 도읍을 두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박혁거세는 육부의 조상들로부터 덕 있는 사람으로 선정되어 방종한 백성을 다스릴 적임자로서 추대되었다. 그래서 보령 13세에 왕위에 올라 신라 최초의 군주가 되어 61년간 백성을 다스렸다.
 
  다스린다는 말에는 교육의 의미가 함의 되어 있으므로 박혁거세는 공인된 신라 최초의 교사인 셈이다. 교사의 인간조건에는 덕이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덕으로 다스리는 군주가 성군이며 성사(聖師)가 아닐 수 없다.
 
  '삼국사기' 본기 신라혁거세거서간, 38년 계사에 낙랑인이 침입하여 국경까지 왔다가 백성들이 밤에 문을 잠그지 않고 편안히 자는 것과 들판에 노적가리가 있는 것을 보고 "도의를 지키는 나라이니, 가히 침범할 수 없다"하고 곧 철병하여 돌아갔다. 이 사적 하나만 보더라도 혁거세거서간은 백성들을 잘 교화하였고, 정사를 잘 폈던 군왕이며 교사로 볼 수 있다.
 
  제17대 내물왕도 홀아비, 홀어미, 고아, 독거노인들에게 곡식을 내리고 특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한 자에게 관직 1급식을 주었다는 것과 백제의 독산성주가 300 명을 이끌고 내투하였을 때 사살하지 않고 왕이 이를 받아들여 육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는 것, 왜병과 말갈이 침략하였을 때 전술전략을 잘 하여 적을 물리침으로써 백성의 목숨을 지킨 것 등은 군왕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려 국기를 튼튼히 하였다.
 
  당시 신라의 입장은 백제가 가야연맹과 왜국 등에 대항하기 위하여 고구려와 연합할 수밖에 없었는데 왕은 혼란했던 난국을 잘 타개함으로서 강력한 국가체제를 형성했다.
 
  이리하여 내물왕은 45년 10개월 동안 통치하면서 제52대 효공왕까지 계속해서 김씨(金氏)가 신라의 왕위를 세습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되었다.
 
  이상의 사적에서 볼 때 박혁거세거서간과 내물왕은 현명한 군왕만이 아니라 신라인들을 잘 가르쳤던 위대한 교사라 생각된다.
교육학박사·새화랑유치원 이사…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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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