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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생활칼럼] 유모차 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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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김영미 작성일20-07-06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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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김영미옆집에는 개를 키운다. 털북숭이가 주인 뒤를 바짝 따라 다닌다. 주인과 있을 때 마주치면 눈치를 보며 옆으로 비켜가다가도 혼자일 때는 악을 서며 대든다. 덩치가 작아서 그리 큰 위협은 안되는듯하지만 이를 드러내고 따라올 때면 발뒷꿈치라도 물릴까 겁이 나기도 한다. 목줄을 채우라면 주인은 마지못해 묶긴 하는데 풀려있을 때가 더 많다. 덩치가 작은 개라 안쓰러워서 그런듯하다. 
 
  옆집 개는 어릴 때부터 키우던 개는 아니다. 아파트에서 살던 개가 이리저리 밀려 한적한 동네로 쫓겨난 셈이다. 옆집은 영 모르는 사람의 부탁도 아니고 마당이나 지키라는 심정으로 들였단다. 전 주인에게 길들여진 개는 까탈스럽기가 사춘기 딸을 다시 키우는 듯하다. 먹던 밥이나 가축사료는 먹지도 않는다. 애견용 고급사료와 우유를 줘야 그제야 먹는다.
 
  버릇을 다시 들이려 굶겨도 봤다. 말 못하는 짐승이 애잔한 눈으로 쳐다보는데 사람만 배부르게 먹기에는 양심이 간질거려 할 수 없이 또 고급사료를 사오고 잠자리를 손 보아준단다. 처음부터 집에 들이지말아야 했는데 하며 후회를 하지만 이미 내 담안에 들인 이상 비위를 맞추게 되어 있다. 그래도 결단코 방으로 들이지는 않았다. 사나흘 현관문에 붙어 앓는 소리를 하더니 이내 독립된 제 공간에 적응을 했다.
 
  집안에 갇혀살 때는 주인의 눈치를 보고 재롱을 부려 간식을 얻어먹고 가끔 산책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가만히 있어도 밥을 주고 귀엽다 한다. 목욕도 자주하지 않아도 된다. 자유까지 주어졌으니 말 그대로 진정한 개팔자 상팔자인 개다.
 
  문제는 다른데서 불거졌다. 늘어나는 식구 때문이다. 어디서 언제 연애를 했는지 배가 불러오더니 애비도 모르는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아놓았다. 집안에 가둬 키웠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을 이만저만한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사실 꼬물거리는 강아지는 예뻤다. 키울 수 있으면 좋지만 예쁜것과 책임지는 것은 별개다.
 
  이미 있는 개도 버거운 판에 더 보탤수는 없었다. 이리저리 전화를 해 분양을 하려했으나 모두 고개를 저을 뿐이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애완견이 수요보다 많은 공급이 이뤄진듯하다. 어쩔수가 없어 결단을 내렸다. 어미는 텅 빈 개집안을 보다가 불은 젓을 핥더니 잊어버린 듯 예전처럼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녔다. 미안한 마음에 눈을 마주 쳐다보지 못하던 주인도 '개가 개지. 별수 있으려고'하면서 잊었다. 
 
  그런데 몇 개월후 또 임신을 했다. 배가 불러오는가 했더니 어느 날 배가 홀쭉해졌다. 개집 안을 살펴봐도, 뒤안이나 구석진 곳을 뒤져도 강아지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다 낳았을까했더니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 밑에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플래시를 비쳐도 잘 보이지않을만큼 깊은 곳에 구멍을 파고 새끼를 낳아 놓았다. 사람의 집에서 사는 개가 자식을 지키는 방법으로 택한 곳이 사람손이 닿지않는 땅밑이었다. 어미개는 주인이 제 새끼를 어찌한 것을 잊지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동생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막내딸이라며 유모차 사진이다. 손자를 볼 나이에 무슨 딸인가 했더니 별이다. 별이는 동생네 애완견 이름이다. 아이들의 성화에 조막만한 강아지가 동생네로 입양이 되어 귀여움을 받은 지 십여년이 지났다. 그간 조카들 소식보다 별이의 사진을 더 자주 봤다. 이제 조카들은 집을 떠나고 개만 남았다. 동생은 별이가 있어 빈둥지증후군을 수월하게 넘긴다며 고마워한다.
 
  그래서 늙어서 걷기조차 버거워하는 개를 개전용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시켜준다. 장례까지 다 준비해뒀다. 동생은 별이가 젊을 때 임의로 불임 수술을 시켜 자식을 두지 못하게 하였다. 그래서 자식도 없는 별이의 임종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란다.
 
  애지중지 키운 사람자식도 부모를 나 몰라라하기 다반산데 개가 자식이 있은들 어찌 하겠는가 싶긴 하지만 여하튼 큰 이변이 없다면 동생네 별이는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것 같다. 나가서 죽어라 열심히 일해서 벌어온 돈으로 먹이고 재우고 시중을 들다 노후까지 보장된 개는 사람들을 보면서 주인이라 여길까? 하인이라 여길까? 그냥 가족이리라.
 
  요즘은 애완견을 사람과 더불어 산다하여 반려견이라 부른다. 주인을 만나기에 따라 평생이 좌우되기는 개만 한 것이 없을 듯싶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이유로 후손까지 좌지우지하는 인간의 행동은 고민해볼 문제이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렇다고 딱히 어쩌자는 생각이 있는 건 아니다. 옳다 그르다 찬반도 사람들의 싱거운 짓이다. 
 
  그나저나 옆집 개주인이 새끼들을 어찌할 것인지 궁금하다. 이번에도 키울 수는 없지 싶다. 그렇다고 그중 한 마리라도 내가 분양받아 키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책임지지 못할 짓은 아예 하지않는 게 옳다. 그래도 복슬복슬한 어린 것이 오랫동안 눈에 밟힐 것 같긴 하다.
수필가 김영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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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