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북서 가장 큰 들 지켜왔죠˝ 넓은만큼 넉넉한 인심 `용동 2리`
페이지 정보
김영식 작성일20-07-09 19:46본문
↑↑ 용동2리 전경.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양복면 용동2리는 양북면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마을이다. 현재는 오암(烏岩), 불암(佛岩), 후촌(後村), 용두(龍頭), 감골, 고봉(高峯)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지만 과거에는 12개 마을이 있을 만큼 큰 마을에 속한다. 과거에는 천방보를 이용해 큰 들에 농업용수를 대다가 권이저수지가 준공되고 나서는 풍부한 농업용수로 더 큰 수확을 얻게 됐다. 천방보는 숙종 3년 정철생이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봇도랑으로 그 길이가 6km에 이른다.
↑↑ 용동2리의 최고령자 정만득, 이재화 부부.
용동2리로 진입하다가 오암마을이 나온다. 오암마을에는 까막바우에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천석꾼의 부자가 오암마을에 살았는데 날마다 지나가는 길손으로 문간채가 늘 붐볐다. 부자는 이 길손들이 귀찮아졌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의 발길을 끊게 할지 고민하다가 어느 스님이 시주를 청하러 오자 방법을 물었다. 스님이 까막바우의 머리 부분을 잘라내라고 가르쳐 주자 부자는 지체없이 달려가 바위의 머리 부분을 잘라냈다. 그러자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가고 그날부터 길손의 발길이 끊겼다. 하지만 그때부터 부자의 가세가 기울어져 재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 방재대책부 직원이 이판보 이장과 마을 협력을 협의하고 있다.
용동2리에는 118가구에 21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50년 전 오암마을 입구에 있는 용동초등학교에 학생 수가 최소한 300여명이 됐다고 하니 과거에 비해 인구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지금은 용동초등학교는 폐교가 됐다. 초등학교에 다닐 어린 학생이 없다는 얘기다. 용동2리의 인구들 중 대부분은 70대 고령자들이다. 심지어 70대는 젊은이 축에 속한다고 한다.이판보 이장은 "70대라 해도 아직 거뜬하게 논밭을 갈고 농사일을 한다"며 "그 어른들은 늘 '아마 이 농사일도 올해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여러 해 계속될 정도로 대부분 장수하시는 편"이라고 말했다.
↑↑ 이판보 이장이 마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장의 말대로 김경애(80)씨는 "18세에 결혼해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다"며 "농사를 짓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는 86세 남편과 함께 지금까지 탈곡을 제외한 모든 농사를 손수 짓고 있다.
용동2리 불암마을에는 5대한의원이 있다. 깊은 시골마을에 한의원이 있다는 말은 신기하다. 이 병원에는 김세환(60) 원장이 180년 5대째 고향마을을 지키고 있다. 김 원장은 이 병원에서 공진단과 신수단을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비법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 선대의 고향으로 옮겨와 자리잡은 오대한의원.
김 원장은 "할아버지 때부터 고향을 지키며 한의원을 운영해 오고 있어 전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직도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원장은 경주와 울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용동2리의 병원을 계속 존속시켰고 최근에는 아예 대도시의 병원 문을 닫고 고향에 정착했다.
↑↑ 후촌마을의 그림같은 옛집.
용동2리의 최고령자는 정만득(99) 할아버지다. 정 할아버지는 최근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양남장에 다닐 정도로 건강하다. 정 할아버지는 "약 2000평 되는 논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물을 대기 위해 15리 천방보를 오고갔다"며 "양북에서 가장 큰 들을 지키며 평생을 살았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 할아버지의 부인 이재화(92) 할머니는 "곡식과 땔감, 숯을 이고 20리 감포장까지 고개 5개를 넘어 팔러다녔다"며 "감포가 없었다면 아마 용동사람들이 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감골마을의 당수나무.
이판보 이장은 "용동2리는 월성원전 상생지원금을 활용해 경주시내 석장동에 건물을 매입해 임대수입을 마을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또 용동초등학교 폐교부지를 매입했고 이 부지는 앞으로 농촌체험마을 사업을 펼칠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동2리의 월성원전 자매부서는 대외협력처 방재대책부다. 전성호 과장은 "양북면에서 가장 큰 면적과 들을 가진 용동2리의 자매부서라는 점이 늘 넉넉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며 "쌀생산량이 많은 마을만큼 꾸준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경북신문=김영식기자] 양복면 용동2리는 양북면에서 면적이 가장 넓은 마을이다. 현재는 오암(烏岩), 불암(佛岩), 후촌(後村), 용두(龍頭), 감골, 고봉(高峯)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뤄져 있지만 과거에는 12개 마을이 있을 만큼 큰 마을에 속한다. 과거에는 천방보를 이용해 큰 들에 농업용수를 대다가 권이저수지가 준공되고 나서는 풍부한 농업용수로 더 큰 수확을 얻게 됐다. 천방보는 숙종 3년 정철생이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봇도랑으로 그 길이가 6km에 이른다.
↑↑ 용동2리의 최고령자 정만득, 이재화 부부.
용동2리로 진입하다가 오암마을이 나온다. 오암마을에는 까막바우에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천석꾼의 부자가 오암마을에 살았는데 날마다 지나가는 길손으로 문간채가 늘 붐볐다. 부자는 이 길손들이 귀찮아졌다. 어떻게 하면 손님들의 발길을 끊게 할지 고민하다가 어느 스님이 시주를 청하러 오자 방법을 물었다. 스님이 까막바우의 머리 부분을 잘라내라고 가르쳐 주자 부자는 지체없이 달려가 바위의 머리 부분을 잘라냈다. 그러자 한 무리의 새들이 날아가고 그날부터 길손의 발길이 끊겼다. 하지만 그때부터 부자의 가세가 기울어져 재물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한다.
↑↑ 방재대책부 직원이 이판보 이장과 마을 협력을 협의하고 있다.
용동2리에는 118가구에 21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50년 전 오암마을 입구에 있는 용동초등학교에 학생 수가 최소한 300여명이 됐다고 하니 과거에 비해 인구가 크게 줄어든 셈이다. 지금은 용동초등학교는 폐교가 됐다. 초등학교에 다닐 어린 학생이 없다는 얘기다. 용동2리의 인구들 중 대부분은 70대 고령자들이다. 심지어 70대는 젊은이 축에 속한다고 한다.이판보 이장은 "70대라 해도 아직 거뜬하게 논밭을 갈고 농사일을 한다"며 "그 어른들은 늘 '아마 이 농사일도 올해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말은 여러 해 계속될 정도로 대부분 장수하시는 편"이라고 말했다.
↑↑ 이판보 이장이 마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장의 말대로 김경애(80)씨는 "18세에 결혼해 지금까지 이 마을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다"며 "농사를 짓지 못하면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씨는 86세 남편과 함께 지금까지 탈곡을 제외한 모든 농사를 손수 짓고 있다.
용동2리 불암마을에는 5대한의원이 있다. 깊은 시골마을에 한의원이 있다는 말은 신기하다. 이 병원에는 김세환(60) 원장이 180년 5대째 고향마을을 지키고 있다. 김 원장은 이 병원에서 공진단과 신수단을 선조 때부터 물려받은 비법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 선대의 고향으로 옮겨와 자리잡은 오대한의원.
김 원장은 "할아버지 때부터 고향을 지키며 한의원을 운영해 오고 있어 전통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직도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김 원장은 경주와 울산에서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용동2리의 병원을 계속 존속시켰고 최근에는 아예 대도시의 병원 문을 닫고 고향에 정착했다.
↑↑ 후촌마을의 그림같은 옛집.
용동2리의 최고령자는 정만득(99) 할아버지다. 정 할아버지는 최근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양남장에 다닐 정도로 건강하다. 정 할아버지는 "약 2000평 되는 논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물을 대기 위해 15리 천방보를 오고갔다"며 "양북에서 가장 큰 들을 지키며 평생을 살았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정 할아버지의 부인 이재화(92) 할머니는 "곡식과 땔감, 숯을 이고 20리 감포장까지 고개 5개를 넘어 팔러다녔다"며 "감포가 없었다면 아마 용동사람들이 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감골마을의 당수나무.
이판보 이장은 "용동2리는 월성원전 상생지원금을 활용해 경주시내 석장동에 건물을 매입해 임대수입을 마을기금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또 용동초등학교 폐교부지를 매입했고 이 부지는 앞으로 농촌체험마을 사업을 펼칠 구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용동2리의 월성원전 자매부서는 대외협력처 방재대책부다. 전성호 과장은 "양북면에서 가장 큰 면적과 들을 가진 용동2리의 자매부서라는 점이 늘 넉넉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며 "쌀생산량이 많은 마을만큼 꾸준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식 7494929@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