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이태 전 머리 깎고 수행자 길 들어선 수도승 `쏭캄`의 고행 > 실시간

본문 바로가기


실시간
Home > 건강 > 실시간

[이상문의 라오스로 소풍갈래?] 이태 전 머리 깎고 수행자 길 들어선 수도승 `쏭캄`의 고행

페이지 정보

이상문 작성일20-07-16 18:20

본문

↑↑ 루앙프라방의 탁발행렬.   
[경북신문=이상문기자] 본당의 구리종이 울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쳤다. 쏭캄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씻었다.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후 새벽 재계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 익숙치 않은 수도승의 고행

  속가에 살 때는 해가 뜨고 난 뒤 이부자리를 걷어도 누가 나무랄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의 지청구가 몇 마디 건너올 뿐 서릿발 같은 노스님의 야단과는 달랐다. 몸을 닦고 자리로 돌아와 보니 도반들은 이미 새벽예불을 위한 매무새를 갖추고 있었다. 쏭캄은 얼른 가사를 두르고 도반들의 뒤를 따라 법당으로 향했다.

  부처님 앞에 놓인 꽃과 향불이 쏭캄의 마음을 흔들었다. 이태 전 머리를 깎고 수행자의 길로 들어선 것이 까마득한 옛일로 여겨졌지만 여전히 미숙하고 어머니의 품이 그립다. 가난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때가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더 높은 학교에 갈 수 없고 아버지의 고단한 노역으로도 부양에 버거울 판이라면 차라리 공부를 계속할 수 있고 입을 덜 수 있는 승가에 몸을 의탁하는 길이 옳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동생들과 산길을 오르내리며 옥수수나 토마토, 카사바, 죽순을 따거나 캐내 주린 배를 채우던 시절이 갈수록 그리워진다. 내년 봄 하안거가 시작되기 전에 수계의식을 치르면 이제 영원히 그리운 속가와의 인연을 씻어내야 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만나는 일도 그 때가 되면 뜸해질 것이다. 향연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쏭캄은 염불에 더욱 집중하려 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                      ↑↑ 루앙프라방의 탁발 의식은 외국인들에게 가장 낯선 관광콘텐츠로 자리잡고 있다.   
◆ 속가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예불이 끝나고 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가사를 다시 가다듬고 발우를 들었다. 쏭캄에게는 세상과 소통하는 가장 쉬운 길이었다. 줄을 지어 탁발에 나서면 고운 마음을 가진 세상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잠시 얽히는 눈길이지만 그들은 어린 승려에게 존경심을 표시한다.

  그것은 부처님을 향한 경배의 또 다른 표현이겠지만 그들이 건네는 밥과 과일, 과자는 쏭캄과 도반들이 하루 동안의 생명을 잇고 더욱 깊이 불경공부에 매진해 달라는 요청인 셈이었다. 노스님이 앞장서고 쏭캄은 일행의 중간쯤에 끼어 경건한 마음으로 걸었다. 길을 걷는 맨발에 아직 굳은살이 앉지 않았다.

  황금색 사원의 흰 담장 즈음에서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보살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의 모습이 겹쳤다. 입성이 점잖고 귀해서 어머니의 허술한 적삼과는 달랐지만 입매와 눈꼬리가 천상 어머니와 같았다.

  쏭캄은 하마터면 발우를 놓치고 그 보살의 품에 안길 뻔 했다. 석 달째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없다. 해소기침이 심하던 아버지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나 아닐지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보살 앞을 지나자 그 보살은 공손하게 합장하고 보시 그릇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더니 문득 쏭캄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보시 그릇을 번쩍 들어 그릇에 담긴 음식들을 모두 쏭캄의 발우에 쏟아 부었다. 찰나였다. 그리고 묵묵히 앞으로 걸었다. 가슴속 깊이 보살의 인자한 얼굴이 어른거렸다.

                      ↑↑ 라오스 사원의 어린 승려들. 라오스의 집안에서는 남성들 중 1명은 출가하는 풍습이 있다.   
  ◆ 탁발길에서 만나는 속가의 사람들

  길모퉁이를 돌아 보살이 앉았을 사원이 보이지 않을 곳까지 왔다.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이미 보살은 빈 보시그릇을 앞에 두고 뒤이어지는 행렬에 공손한 합장경배를 드릴 것이었다.

  쏭캄의 머릿속에는 내내 보살의 자태가 맴돌았다. 어찌된 일일까? 어쩌자고 어머니는 기별을 끊었을까. 어쩌자고 사무치게 그리운 어머니는 새벽녘 탁발 행렬에 묻혀 새로운 모습으로 화현하신 걸까. 쏭캄은 마음이 어지러웠다. 시장을 지나 큰길이 나타났다. 쏭캄의 발우는 보살의 보시로 가득 찼다. 황금빛 금잔화 다발이 놓인 길거리에서 쏭캄은 다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보시행렬이 끝나갈 즈음 큰 대나무 바구니를 앞에 두고 쏭캄을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 루앙프라방 시민들이 탁발이 시작되기 전 해가 뜨기도 전에 미리 좌정을 하고 승려들을 기다리고 있다.   
  께오였다. 쏭캄이 꼬챙이로 물렁한 땅을 헤치고 카사바를 캐내면 나무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후벼 파던 일이 즐겁다고 했던 철없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구멍이 쑹쑹 뚫린 셔츠에 가녀린 종아리가 덜렁 드러나는 반바지 차림의 아이는, 분명 께오였다. 이갈이를 하던 참이어서 아랫니 서너 개가 빠져 웃을 때마다 바보처럼 보이던 아이였다.

  오늘 아침 왜 이러는 걸까. 쏭캄은 나지막히 경을 외었다. 흔들리지 말자, 약해지지 말자. 아이 앞을 지나면서 아이 앞에 놓인 대바구니를 보았다. 바닥이 들여다보였다. 쏭캄은 자신의 발우를 뒤집었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윗니 서너 개가 달아나고 없었다. 불가사리 같은 손을 들어 합장을 하는 아이를 뒤로 하고 쏭캄은 멀리 보이는 사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상문   iou518@naver.com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울릉·독도 신문. All rights reserved.
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