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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섭 칼럼] 동네 술집 없이 어떻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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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물류 대표 배태섭 작성일20-08-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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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S물류 대표 배태섭2009년 8월, 영국 요크셔주 북부 허즈웰이라는 지역의 한 마을에 위기가 닥쳤다. 단 하나뿐인 동네 술집 '조지 앤드 드래곤'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급기야 건물의 소유권은 은행에 넘어갔고 100년도 넘게 마을의 주막 노릇을 하면서 주민들의 대화의 장이었던 곳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마을사람들이 한 마음이 돼 나섰다.
 
  180여명의 주민들은 허즈웰 공동체 술집이라는 협동조합을 만들고 출자금을 모았다. 공동체에 투자하는 기금의 도움도 얻었다. 주민들의 노력으로 1년이 채 안 된 2010년 6월에 '조지 앤드 드래곤'은 다시 문을 열게 됐다. 주민들은 제각각의 재능기부로 내부를 새롭게 단장했고 음식과 술의 질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그리고 건물 한켠에 작은 도서관과 지역 특산품을 파는 매장도 새로 만들었다. 생겼다.
 
  요크셔주 서부 리즈시 헤딩리 마을 한가운데 1882년 지어진 초등학교 건물이 있었다. 2005년 지어진지 120년이 넘은 건물은 매각될 위기에 처했다. 초등학교 건물은 마을의 역사 그 자체였지만 관리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개발업자가 그 건물을 사들여 임대용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고 지자체도 업자 편에 서서 매각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교육의 현장이 상업적으로 개발되는 것을 두고볼 수 없다며 '헤딩리 개발 신탁'을 설립했다. 건물을 직접 인수해 마을 센터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주민들은 매각을 위해 개발업자와 협의 중이던 지방 정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모델링 비용인 130만 파운드(22억여원)를 마련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5년 동안 노력해 비용을 마련하고 지방 정부와 125년의 임대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매각 위기를 넘긴 건물은 결혼식, 예술 전시, 공연, 축제 등이 열리고 작은 공간은 어린이 보육시설이나 밴드 연습실로 쓰인다. 또 싼 가격에 좋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운영된다.
 
  이 같은 사례는 민주주의가 고도로 발전된 영국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역의 토지나 건물을 사들여 주민들이 공익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공공의 자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매우 부러운 일이다. 처음에는 비록 작은 규모로 시작하지만 주민 모두의 뜻을 모아 노력하다 보면 수익 사업을 펼쳐 점점 규모가 커질 수도 있고 공익사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도시의 개발이 상업적인 논리와 시각으로 이뤄지는 시대에 이 같은 공동체의 풀뿌리 운동은 매우 의미가 크다.
 
  물론 이 같은 시도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하고 국민 의식의 변화도 필요로 한다. 가치가 있는 사업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를 하는 금융기관과 재단이 생겨야 하고 주민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지자체의 긍정적 시각도 필요하다.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금융기관은 단 한 푼의 손해도 보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담보의 가치와 사업성을 먼저 따져서 투자를 한다. 사업계획서만으로 그 사업의 가능성을 따지는 금융기관은 사실상 전무하다. 또 비영리 재단이 우후죽순처럼 생기지만 이처럼 '공공의 자산'을 구축하기 위한 재단의 출현은 보기 힘들다. 그리고 지자체도 직접적인 지원은 가능하되 주민들의 자발적인 활동에는 관여하기를 꺼려한다. 우리의 환경으로 봐서는 영국의 주민 운동은 아직 요원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국민의 의식도 문제다. 마을의 공동 번영을 위한 사업에 끼어드는 것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대신 주도권을 가지고 공동사업을 펼치는 집단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는 지나치게 날카롭다.
 
  개인의 재산에 축이 날까도 겁이 난다. 공동 사업에 끼어들었다가 잘못될 경우 받게 될 불이익을 미연에 차단하려 하는 습성이 강하다. 이런 환경을 바꾸지 않고서는 공동체의 안정되고 공익적인 발전을 얻으려는 선순환은 어렵다. 님비현상과 핌피현상이 극도로 두드러진 우리 사회에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민간사업이 성공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답답하기만 하다.
TS물류 대표 배태섭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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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