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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석(昔)씨 왕들의 이야기-제34화] 석탈해왕 릉향사 준비와 봉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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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씨대종회 원로회장 석진환 작성일20-08-17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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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씨대종회 원로회장 석진환[경북신문=석씨대종회 원로회장 석진환] ▲ 석탈해왕께 올리는 향사의 종류

  서기1926년(병인년)에 처음으로 삼성왕릉(三姓王陵)에 참봉을 두어 향례를 올리게 되었는바, 제향(祭享)의 종류는, 매년 추분날(秋分日 : 9월 23일)에는 왕릉에서 향사를 올리게 되며, 봄의 춘분일(春分日 : 3월 20일)에는 석탈해왕의 신위(神位)를 모신 제당(祭堂)인 숭신전(崇信殿) (朴씨는 崇德殿, 金씨는 崇惠殿)에서 봉행하는데, 전국에서 모인 일족들이 참여하여 엄숙하고도 성대하게 향사를 올리게 된다.
 
  이 외에도 참봉은 음력으로 삭망일(朔望日 : 초하루와 보름날)엔 전(殿)과 릉에 분향하고 사배(四拜) 후 릉과 전을 한바퀴 순시(확인)를 하는데 이를 '삭망분향'이라 한다.

  ▲왕릉 향사시 제수의 진설

  과실, 떡, 튀김 등의 진설은 제기(祭器) 위에 쌓을 때 제물의 높이는 1척(30cm) 이상 높게 고여야 하며, 과일 외의 모든 제수는 가열(加熱 : 튀기거나, 삶거나, 굽거나, 찌는 등으로 불로 익힘)하여 준비하는데 그 종류는 20여종이나 된다. (이와 정 반대로 봄향사 때는 불을 일체 쓰지 않고 모든 제수는 날(生) 것으로 제상을 차린다)

                        ▲ 향사의 대표 제관인 헌관

  향사가 최초로 시작된 1926년부터 향례의 대표 헌관인 초헌관(初獻官)은 본도(경상북도) 도지사가 직접 집례하였고, 부득이 불참할 경우 도지사가 위임한 부지사나 경주군수가 도지사를 대행하여 봉행 하였는데, 도지사 한 분이 같은 날에 3성(박, 석, 김) 향사를 집례하기 위해서는 부득이 시차를 두어 10시에는 박씨, 11시에는 석씨, 12시에는 김씨 향전을 차례로 순회하면서 집례를 하였다.
 
  이후 초헌관을 경주시장 또는 월성군수에게 위임하여 집례하여 오다가, 1991년부터 시행된 지방자치제선거법에 의하여 '피선거권이 있는 자의 헌관 위촉이 제한'됨에 따라 선거와는 무관한 외부 인사나 일족 중에서 적임자를 헌관으로 위촉하고 있는 오늘이다.

                        ▲ 향사의 순서

  왕릉에서 봉행되는 가을(秋季) 향사의 순서를 요약해 보면 : 찬자(贊者 : 사회자)의 시나리오에 따라 ①제상의 차림과 각종 준비가 완벽한가를 점검하는 점시진설(點視陳設)을 시작으로. ②행사요원 및 일반 참제원이 먼저 입장하여 절 네 번(四拜) 올리기. (※참고 : 일반인의 제사 때는 절을 두 번(재배:再拜) 하나, 임금님께는 사배(四拜:네번)를 올리는 것이 예법(禮法)이다.) ③헌관(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3명이 입장하여 절 네 번 올리기. ④첫 번째 헌관(初獻官)의 전폐례(奠幣禮) 순서로 제단 앞에 나아가 향을 세 번 테운 후 폐백(幣帛)을 제단에 올린다. ⑤이어서 초헌례(初獻禮)로서 초헌관이 술잔을 제상에 올리면, 이어서 대축관(大祝官)이 축문을 낭독한다. ⑥다음은 두 번째 헌관인 아헌관(亞獻官)이 제단에 나아가 술잔을 올린다. ⑦세 번째 헌관인 종헌관(終獻官)이 제단에 나아가 술잔을 올린다. ⑧초헌관이 다시 재단 앞에 나가서 술잔을 받아 마시고 대추나 밤을 안주로 먹는 음복(飮福)을 한다. ⑨마지막으로 축문과 폐백을 불테우는 망료례(望燎禮)를 끝으로 향사의 제례를 모두 마치게 된다. 향사의 전체 진행 시간은 대략 30분을 넘지 않는다.
 
  우리 석씨는 타성(박, 김)에 비하여 참여 인원이 많지 않음으로 향사가 끝난 후 모든 참석 회원들에게 오찬을 겸한 음복상이 제공되고, 참가 기념품 제공과 경품추첨 등의 프로그램 진행으로 전국에서 모인 일족들의 친선과 화합을 이루는 축제일이 되고 있다.

                        ▲ 최근의 왕릉 관리

  초대 릉참봉 채진(采震)이 논 3두락을 흥쾌히 종중에 헌납하는 동시 자비로 제기 모두를 구입하였고, 릉참봉 환(煥)은 시멘트로 상석을 설치하였다. 서기1954년(갑오년)에 릉참봉 봉우(鳳佑)는 경상북도 보조금 3만환을 얻어 시멘트 상석 대신 미석으로 상석 및 시조왕릉을 표시하는 비석을 세웠으며, 서기1957년(정유년)에 전참봉 봉희(鳳熙 : 경주군수 역임)는 중앙보조금 100만환을 지원받아 철책원장을 릉 둘레에 설치하였다. 서기1973년(계축년)에 초대 릉참봉이 릉답으로 종중에 기증한 구황동소재 논 543평이 산업도로에 편입되었고 이에 따른 보상금 62만8500원을 본손인 'ㅎㅇ'이 수령하여 종중에 납입치 않으므로 릉답을 대토치 못하니 선인의 정성을 저버리게 되어 죄스럽고 한탄스러움을 금할 길 없다. 서기1984년 석중찬(昔重燦) 종친회장과 전임 殿참봉 성열(聖烈)을 비롯한 종현(鍾鉉), 정식(貞植), 재련(在鍊), 진용(振龍), 동준(東俊)등 전국 종친들의 협조와 노력으로 시조왕릉과 릉역의 침하된 부분을 복원하고 릉봉을 높고 크게 사초(莎草)하였다.
 
  릉의 제상인 상석이 소형이였으므로 사단법인 석탈해왕릉보존회 초대 이사장 기봉(基鳳)이 자비 150만원과 종중부담 38만원으로 명실상부 왕릉에 걸맞는 전석을 설치하였다. 왕릉 향사에서 헌관이 절하는 자리(拜臺)와 향탁 앞 헌관이 향을 피우고 잔을 올리며 절 하는 자리 모두가 잔디여서, 우천시 또는 이슬이 많이 맺히는 계절엔 신발이 젓거나, 물이 맺힌 잔디에 꿇어 절하기가 거북하였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6년 대종회장 진환(珍煥)이 헌관배대와 제상 앞 향제를 올리는 자리,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통로를 대리석으로 시공한 후, 빨간색 카펫까지 깔게하므로 릉향의 품위는 물론 제향 진행이 원활하도록 완공하였다.

  ▲ 릉참봉(陵參奉)

  왕릉의 수호·관리와 제향(祭享) 준비 및 봉행을 위한 책임자인 참봉(參奉)을 임명하게 되어 있는 바, 문중 총회에서 적임(후보)자를 선출하여 경주시장 경유 경상북도지사에게 임용을 상신하면 경상북도지사 명의(名義)의 참봉 임명장을 받아 3년의 임기동안 맡은 바 소임을 수행하게 되는데, 본 제도가 생긴 서기1926년(병인년) 이래 석탈해왕릉 참봉을 역임한 봉사자는 : 초대 석채진(하동), 2대 석봉래(경주), 3대 석 환(경주), 4대 석봉래(경주), 5대 석양운(논산), 6대 석정학(봉화), 7대 석완철(상주), 8대 석봉우(경주), 9대 석종학(대구), 10대 석중찬(영덕), 11대 석병현(문경), 12대 석봉렬(하동), 13대 석말룡(울산), 14대 석순관(봉화), 15대 석덕경(공주), 16대 석재련(대구), 17대 석동준(청주), 18대 석 숭(공주), 19대 석천수(울산), 20대 석태수(논산), 21대 석영채(경주), 22대 석봉철(대구), 23대 석진모(서울), 24대 석준기(경주), 25대 석현기(경주), 26대 석수봉(영주), 27대 석동우(경주), 28대 석병기(포항), 29대(현재) 석차랑(울산)이다.  <계속>
석씨대종회 원로회장 석진환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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